좋은 글과 나쁜 글의 경계에서
좋은 글이란 무엇인가, 나쁜 글이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단정적으로 답하는 일은 어쩌면 글쓰기의 본질을 가장 빠르게 배반하는 길일지도 모른다. 글에는 정답이 없다는 말은 너무 자주 인용되어 닳아버렸지만, 그 닳음 속에도 지워지지 않는 진실이 있다. 다만 정답이 없다는 사실이 곧 기준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좋은 글과 나쁜 글 사이에는 분명히 경계가 존재한다. 그 경계는 문법이나 수사의 차원에 있지 않고, 글을 쓰는 사람이 자기 자신과 독자를 어떻게 대했는가 하는 태도의 차원에 있다.
좋은 글은 우선 정직하다. 정직하다는 말은 사실을 그대로 적었다는 뜻이 아니다. 자신이 무엇을 알고 있고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어디까지 확신하고 어디서부터 머뭇거리는지를 숨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좋은 글에는 글쓴이가 그 문장 앞에서 망설였던 흔적이 남아 있다. 망설임의 흔적은 약점이 아니라 신뢰의 근거가 된다. 독자는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주장하는 사람보다, 자신이 지금 더듬어 가고 있다고 고백하는 사람의 말을 더 깊이 듣는다. 반대로 나쁜 글은 자신이 모르는 것까지 아는 척한다. 빈 곳을 화려한 어휘로 메우고, 단정적인 어조로 방어막을 세운다. 그러나 어휘는 빈자리를 가릴 뿐 메우지 못한다.
좋은 글은 또한 구체적이다. 추상적인 진술은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지만, 추상이 구체에 뿌리를 내리지 못할 때 글은 공중에 떠버린다. 사랑이 무엇인지를 말하기 위해 사랑의 정의를 늘어놓는 글보다, 어느 겨울 저녁 어머니가 끓여 주신 미역국 한 그릇을 묘사하는 글이 더 멀리 가닿는다. 구체는 글쓴이가 세계를 얼마나 자세히 들여다보았는지를 증명하는 흔적이다. 나쁜 글은 자주 구체의 자리에 일반화를 들여놓는다. ‘요즘 사람들은’, ‘우리 사회는’, ‘인간이란’ 같은 거대한 주어가 한 문단에 여러 번 등장할 때, 그 글은 누구의 이야기도 아닌 누구의 이야기도 될 수 없는 자리로 미끄러진다.

좋은 글은 독자를 신뢰한다. 모든 것을 친절하게 풀어 설명하는 글이 반드시 좋은 글은 아니다. 오히려 어떤 친절은 독자를 어린아이 취급하는 무례에 가깝다. 좋은 글은 독자가 행간을 읽을 수 있다고 믿고, 비유를 알아챌 수 있다고 믿고, 결말에 이르기 전에 스스로 생각할 수 있다고 믿는다. 독자에 대한 신뢰는 문장의 여백으로 드러난다. 모든 것을 다 말하지 않는 용기, 결정적인 한마디를 끝내 아껴 두는 절제가 그것이다. 나쁜 글은 그 반대로 독자를 의심한다. 같은 말을 세 번 반복하고, 자기 결론을 두 번 강조하며, 마지막에는 굳이 ‘즉’이라는 말로 다시 정리한다. 그렇게 글은 두꺼워지지만 깊어지지는 않는다.
좋은 글은 자기 리듬을 가지고 있다. 글에는 호흡이 있다. 짧은 문장과 긴 문장이 번갈아 나타나며 박자를 만들고, 단락은 한 번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단위가 된다. 좋은 글을 소리 내어 읽으면 어느 지점에서 잠시 멈추어야 하는지가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리듬은 기교가 아니라 사고의 형태다. 자기 생각의 흐름을 정확히 듣고 있는 사람만이 자기 글의 리듬을 만들 수 있다. 나쁜 글은 리듬이 없거나, 빌려온 리듬을 어색하게 흉내 낸다. 어디서 읽었던 문체가 문득 끼어들고, 갑자기 격앙되었다가 갑자기 차가워지며, 단락의 길이가 들쭉날쭉해 독자의 호흡을 무너뜨린다.
그러나 좋은 글의 가장 깊은 표지는 따로 있다. 그것은 글이 끝난 뒤에도 독자의 마음에 어떤 질문 하나를 남긴다는 점이다. 좋은 글은 독자에게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가 평소에 묻지 않던 질문 앞에 잠시 멈추어 서게 만든다. 책장을 덮은 뒤에도 어떤 문장 하나가 며칠 동안 따라다니고, 그 문장이 일상의 한순간을 다른 빛으로 비춘다면, 그 글은 자신의 일을 다한 것이다. 나쁜 글은 반대로, 다 읽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정보는 있었으나 흔적은 없고, 주장은 강했으나 여운은 없다. 글을 덮자마자
잊히는 글은, 처음부터 글쓴이 자신에게도 절실하지 않았던 글일 가능성이 크다.
결국 좋은 글과 나쁜 글의 차이는 기술의 차이가 아니라 태도의 차이로 수렴한다. 자기 자신에게 정직했는가, 세계를 충분히 자세히 보았는가, 독자를 동등한 사람으로 마주했는가, 자기 호흡을 잃지 않았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그 글을 쓰는 일이 자신에게 절실했는가. 이 다섯 가지 물음 앞에서 통과한 글이 좋은 글이고, 어딘가에서 비껴간 글이 나쁜 글이다. 그러므로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바람은 결국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과 멀지 않다. 글은 기술로 다듬어지지만, 끝내 사람으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글 앞에서 우리가 되풀이해야 할 일은 더 화려한 표현을 찾는 일이 아니다. 자기 안의 모름을 정직하게 들여다보고, 세계의 한 귀퉁이를 더 자세히 바라보고, 독자라는 또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연습을 거듭하는 일이다. 그 연습이 쌓인 자리에서, 어느 날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좋은 글은 조용히 자기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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