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쓰는 글은 왜 나를 담지 못하는가
누군가 AI에게 글을 대신 써달라고 부탁할 때, 그 결과물은 대체로 매끄럽고 논리적이며 문법적으로 흠 잡을 데 없다. 그런데 막상 읽고 나면 묘한 이질감이 남는다. 분명 내가 원하는 내용인데, 어딘지 내 글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이 감각은 착각이 아니다. AI가 생산하는 텍스트는 구조적으로 개인의 사유와 가치관을 반영하기 어렵게 설계되어 있다.
AI 언어 모델은 방대한 텍스트 데이터를 학습하여 통계적으로 가장 자연스러운 문장을 생성한다. MIT 미디어랩의 연구자 케이트 크로퍼드(Kate Crawford)는 저서 AI의 지도(2021)에서 현재의 AI 시스템이 특정 문화권과 언어 집단의 글쓰기 패턴을 압도적으로 많이 학습했으며, 그 결과 모델 자체가 주류적이고 평균적인 표현 방식에 수렴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즉, AI는 가장 많은 사람이 동의할 법한 문장을 만들어내는 방향으로 최적화되어 있다. 이 구조 안에서 개인의 독특한 세계관, 소수의 관점, 혹은 지극히 사적인 감정의 결은 자연스럽게 소거된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AI가 경험을 갖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글쓰기 연구자 피터 엘보우(Peter Elbow)는 진정한 글쓰기란 필자가 자신의 내면 목소리를 발견하고 외화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어떤 사건을 겪으며 형성된 신념, 특정 선택을 반복하면서 굳어진 윤리적 직관, 오랜 관계 속에서 학습된 타인에 대한 태도, 이 모든 것이 한 사람의 글을 그 사람답게 만드는 요소다. AI는 이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인간이 살아온 시간의 총합에서 비롯되는 것들을 모방할 수는 있어도, 그것을 실제로 보유할 수는 없다.
여기에 가치 정렬(Value Alignment) 문제가 겹친다. OpenAI, Anthropic 등 주요 AI 개발사들은 모델이 유해한 내용을 생성하지 않도록 인간 피드백 기반 강화학습(RLHF)을 적용한다. 이 과정에서 AI는 보편적으로 수용 가능한 답변을 선호하도록 조정된다. 그런데 이것은 동시에, 논쟁적이거나 비주류적이거나 특정 개인만의 가치판단이 필요한 영역에서 AI가 의도적으로 중립적 입장을 취하게 만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의 글쓰기는 종종 자신만의 강한 입장을 표명하는 행위인데, AI는 그 입장을 무디게 다듬어버린다.
물론 AI는 글쓰기의 많은 부분을 효율화할 수 있다. 자료를 요약하고, 초안을 빠르게 생성하며, 구조를 잡아주는 역할은 분명히 유용하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글이 되려면, 결국 그 위에 내 경험과 판단, 모순과 감정을 덧씌우는 작업이 필요하다. 스탠퍼드대 철학자 마이클 샌델은 인간의 도덕적 판단은 추상적 원칙이 아니라 구체적 서사와 공동체적 맥락에서 형성된다고 말했다. AI가 쓴 글이 공허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그 서사의 부재, 즉 그 글을 낳은 삶이 없기 때문이다. 글이란 결국 사람이 살아온 흔적이며, AI는 아직 그 흔적을 가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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