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고 싶은 책을 찾는 방법
쓰고 싶은 책을 써야 한다는 말에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막상 책상 앞에 앉으면 막막해진다. 정작 내가 쓰고 싶은 책이 무엇인지 모르겠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또렷한 한 권이 이미 들어 있는 사람은 드물다. 대부분은 안개처럼 뿌연 무언가를 품고 있을 뿐, 그것의 윤곽을 잡지 못한 채 오래 서성인다. 그러나 쓰고 싶은 책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계시가 아니라, 자기 안을 부지런히 들여다보고 밖을 성실히 겪어 내는 과정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찾는 방법이 분명히 있다. 몇 가지로 나누어 이야기해 보려 한다.
가장 먼저 할 일은 나를 오래 붙드는 것이 무엇인지 살피는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도 모르게 되돌아가는 자리를 가지고 있다. 대화가 그 주제에 이르면 목소리가 커지고, 관련된 책이나 기사가 보이면 저절로 손이 가고, 잊을 만하면 다시 떠올라 마음을 붙잡는 무언가가 있다. 그것이 거창한 사상일 필요는 없다. 어릴 적 살던 골목의 풍경일 수도, 오래 앓아 온 질문일 수도, 남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소한 취향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나를 지치지 않게 한다는 사실이다. 오래 붙들어도 물리지 않는 주제야말로 한 권의 책을 끝까지 밀고 갈 연료가 된다. 그러니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무엇에 대해서라면 몇 시간이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

다음으로, 나를 흔들었던 순간들을 되짚어 보아야 한다. 쓰고 싶은 이야기는 대개 감정의 깊은 자국에서 나온다. 크게 기뻤던 일, 오래 아팠던 일, 억울했거나 부끄러웠던 일, 도무지 잊히지 않는 어떤 장면. 이런 순간들은 그저 지나간 경험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이는 사람인지를 보여 주는 단서다. 그 자국들을 하나씩 꺼내어 왜 그것이 나를 그토록 흔들었는지 캐물으면, 그 아래에서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떠오른다. 감정이 격했던 자리에는 반드시 내가 소중히 여기는 무언가가 숨어 있다. 그 무언가를 찾아내는 것이 곧 주제를 찾는 일이다.
읽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쓰고 싶은 책을 찾는 가장 확실한 방법 중 하나는 많이 읽는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어떤 대목에서는 무릎을 치며 공감하고, 어떤 대목에서는 이건 아니라며 반발하게 된다. 바로 그 반응이 나침반이다. 깊이 끌리는 책은 내가 어떤 이야기를 사랑하는지 알려 주고, 강하게 반발하는 책은 내가 무엇을 다르게 말하고 싶은지를 일깨운다. 특히 다 읽고 나서 아쉬움이 남는 책, 나라면 이렇게 썼을 텐데 하는 마음이 드는 책은 각별히 눈여겨볼 만하다. 그 아쉬움이 바로 내가 채우고 싶은 빈자리이고, 세상에 아직 없는 그 책을 쓸 사람이 어쩌면 나일지 모른다.
머릿속으로만 궁리해서는 좀처럼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손을 움직여 써 보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 떠오르는 생각의 조각들을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적어 두는 습관, 인상 깊은 문장을 옮겨 적는 필사, 하루의 감상을 짧게 기록하는 일기, 무엇이든 좋다. 쓰다 보면 손이 머리보다 먼저 안다. 이상하게도 자꾸만 되돌아와 쓰게 되는 소재, 쓸 때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주제가 반복해서 나타난다. 그 반복이 곧 신호다. 머리로 세운 계획과 손이 실제로 향하는 곳이 다를 때는, 대개 손 쪽이 더 정직하다. 그러므로 완벽한 주제를 정한 뒤에 쓰기 시작하려 하지 말고, 일단 쓰면서 주제를 발견해 나가는 편이 낫다.
찾는 과정에서 조급함은 가장 큰 방해물이다. 쓰고 싶은 책은 단번에 결정되기보다 여러 겹의 시행착오를 거쳐 서서히 선명해진다. 처음에 붙든 주제가 아니었음을 깨닫고 방향을 바꾸는 일도 흔하다.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좁혀 가는 과정이다. 여러 갈래를 기웃거리고, 몇 번쯤 헛걸음도 하면서, 아닌 것들을 하나씩 지워 나가다 보면 남는 것이 있다. 그 남는 것이 내가 진짜로 쓰고 싶은 이야기다. 조급해하지 말고, 다만 멈추지만 말자.
결국 내가 쓰고 싶은 책을 찾는 일은 나 자신을 알아 가는 일과 다르지 않다. 무엇에 끌리고, 무엇에 아파하고, 무엇을 견딜 수 없어 하는지를 알게 될 때, 쓰고 싶은 책의 윤곽도 함께 또렷해진다. 그러니 밖에서 답을 구하려 두리번거리기 전에 먼저 안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쓰고 싶은 책은 이미 내 안 어딘가에 씨앗으로 들어 있다. 그것을 알아보고 물을 주어 싹 틔우는 일, 그것이 바로 쓰고 싶은 책을 찾는다는 말의 참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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