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하는 분야의 책보다 내가 쓰고 싶은 책을 써야 하는 이유
서점에 들어서면 매대 가장 앞자리를 차지한 책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지금 이 계절에 가장 많이 팔린다는 주제, 사람들이 앞다투어 이야기하는 화제, 표지 디자인마저 서로 닮은 책들이 나란히 놓여 있다.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이라면 그 앞에서 잠시 흔들리게 마련이다. 저 흐름에 올라타면 나도 저 자리에 설 수 있지 않을까. 유행을 따라가면 적어도 외면당하지는 않으리라는 계산이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이왕 오랜 시간을 들여 한 권을 쓸 바에는 사람들이 이미 찾고 있는 것을 쓰는 편이 안전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유행하는 책이 아니라 내가 쓰고 싶은 책을 써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이 단지 낭만적인 고집이 아니라 오히려 더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유행은 언제나 나보다 앞서 있다. 어떤 주제가 서점 매대를 점령했다는 것은 이미 그 물결이 정점에 가까워졌다는 뜻이다. 독자가 그 흐름을 감지하고, 출판사가 기획하고, 저자가 원고를 쓰고, 편집과 인쇄를 거쳐 책이 독자의 손에 닿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걸린다. 짧게는 반년, 길게는 몇 해가 걸리는 일이다. 내가 오늘 유행을 발견하고 지금부터 글을 쓰기 시작한다면, 그 책이 세상에 나올 무렵 유행은 이미 다른 곳으로 옮겨 가 있을 공산이 크다. 유행을 좇는 글쓰기는 결국 뒷모습을 향해 달리는 일과 다르지 않다. 앞서가는 것을 따라잡으려 숨 가쁘게 달리는 사이, 정작 내가 오래 붙들고 있을 수 있는 주제는 손에서 빠져나가 버린다. 남이 만든 속도에 맞추어 뛰다 보면 내 걸음의 리듬을 잃어버리고 만다.

다음으로, 남이 정해 준 주제로는 오래 버티기 어렵다. 한 권의 책을 완성하는 일은 생각보다 길고 지루한 싸움이다. 처음의 열의는 몇 장을 넘기지 못하고 식어 버리고, 그다음부터는 순전히 붙들고 늘어지는 힘으로 원고를 밀고 나가야 한다. 쓰다가 막히고, 다시 지우고, 어제 쓴 것이 오늘 보면 형편없어 보이는 날들이 이어진다. 이때 나를 끝까지 책상 앞에 앉혀 두는 것은 시장의 계산이 아니라 이 이야기를 내가 꼭 하고 싶다는 마음이다. 유행이라는 이유만으로 택한 주제는 힘이 부칠 때 붙잡을 손잡이가 없다. 팔릴 것 같아서 시작한 글은 팔릴지 확신이 서지 않는 순간 곧바로 무너진다. 반면 내가 진심으로 궁금해하고 사랑하는 주제는, 아무리 막막한 순간에도 다시 펜을 들게 하는 이유가 되어 준다. 완성이라는 결승선에 닿게 하는 힘은 결국 나 자신의 절실함에서 나온다.
또한, 내가 쓰고 싶은 책에는 나만이 쓸 수 있는 무언가가 담긴다. 유행하는 주제는 이미 여러 사람이 비슷한 각도에서 다루고 있다. 그 대열에 한 권을 더 보태는 일은, 아무리 잘 쓴다 해도 결국 비슷한 책들 사이에 파묻히기 쉽다. 독자의 눈에는 그 책이 그 책처럼 보이고, 조금 더 유명한 저자의 이름이나 조금 더 큰 출판사의 힘에 밀려 잊히기 십상이다. 그러나 내가 오래 품어 온 질문, 나만의 경험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는 다른 누구도 대신 써 줄 수 없다. 그것은 흉내 낼 수 없는 나만의 차별성이다. 세상에 넘쳐나는 것은 잘 팔리는 책이지, 나만이 쓸 수 있는 책이 아니다. 독자가 끝내 마음에 담아 두는 책 역시 유행의 한복판에 있던 책이 아니라, 어딘가 자기만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배어 있던 책인 경우가 많다. 결국 오래 살아남는 것은 유행이 아니라 개성이다.
물론 유행을 완전히 무시하라는 뜻은 아니다. 지금 사람들이 무엇에 목말라하는지, 어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지 살피는 것은 쓰는 사람에게 분명 도움이 된다. 세상과 담을 쌓고 자기 세계에만 갇힌 글은 아무에게도 가닿지 못한 채 홀로 맴돌기 쉽다. 다만 유행이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유행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세상에 더 잘 건네기 위한 참고일 뿐, 무엇을 쓸지 결정하는 주체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내 안에서 우러난 주제를 붙들되, 그것을 지금의 독자에게 어떻게 가닿게 할지 고민하는 순서가 옳다. 무엇을 쓸 것인가는 나에게서 나오고, 어떻게 전할 것인가에서 세상을 참고하는 것이다. 시작점은 언제나 나여야 한다.
결국 글쓰기는 유행이라는 바깥의 물결에 몸을 맡기는 일이 아니라, 내 안에서 솟아오르는 이야기를 길어 올리는 일이다. 유행을 좇아 쓴 책은 유행이 지나가면 함께 잊히지만, 내가 온 마음으로 쓴 책은 시간이 지나도 그 사람의 것으로 남는다. 무엇보다, 쓰고 싶은 것을 쓸 때에만 글쓰기는 견디는 노동이 아니라 살아 있는 즐거움이 된다. 그 즐거움이야말로 다음 문장을, 다음 책을 쓰게 하는 가장 오래가는 연료다. 그러니 매대의 유행 앞에서 흔들릴 때마다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지금 팔리는 책을 쓰고 싶은가, 아니면 오래 내 것으로 남을 책을 쓰고 싶은가. 그 답 안에 내가 써야 할 책이 이미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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