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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쓰기 기초 - 글쓰기

무엇을 쓸 것인가보다 중요한 '왜 쓰는가'의 힘

by Andres8 2026.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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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쓸 것인가보다 중요한 '왜 쓰는가'의 힘

 

글을 쓰는 이유를 모르면 무엇을 쓰는지 모른다는 말은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글쓰기의 본질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겨 있다. 우리는 종종 글을 쓰면서도 정작 왜 쓰는지 모를 때가 있다. 누군가 시켜서, 습관적으로, 혹은 그저 무언가를 채워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키보드를 두드리거나 펜을 든다. 하지만 목적 없는 글쓰기는 방향 없는 항해와 같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노를 젓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글을 쓰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이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쓰고, 어떤 이는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전달하기 위해 쓴다. 분노를 토해내기 위해 쓰는 사람도 있고, 사랑을 고백하기 위해 쓰는 사람도 있다. 기록하기 위해, 기억하기 위해, 혹은 잊기 위해 글을 쓰기도 한다. 이 모든 이유들은 글의 성격을 결정짓는다. 분노로 쓴 글은 날카롭고, 사랑으로 쓴 글은 부드럽다. 기록을 위한 글은 객관적이고, 기억을 위한 글은 주관적이다.

 

그런데 이유를 모르고 쓴 글은 어떤 모습일까. 그것은 마치 초점 없는 사진과 같다. 무엇을 찍었는지는 알겠는데,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는 알 수 없다. 문장들은 존재하지만 방향성이 없고, 단어들은 나열되어 있지만 힘이 없다. 읽는 사람도 혼란스럽지만, 정작 쓴 사람 자신도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명확하지 않다.

 

나는 오랫동안 글을 써왔지만, 때때로 이유 없이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냥 써야 할 것 같아서, 글 쓰는 사람이니까 당연히 써야 한다고 생각해서 컴퓨터 앞에 앉았다. 하지만 그렇게 쓴 글들은 대부분 완성되지 못했거나, 완성되었다 해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글을 다 쓰고 나서도 '내가 무슨 말을 한 거지?'라는 의문이 남았다. 그것은 글이 아니라 단지 문장들의 나열이었을 뿐이다.

AI사용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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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분명한 이유를 가지고 쓴 글은 달랐다. '이 부조리한 상황을 고발하고 싶다', '이 아름다운 순간을 기록하고 싶다', '내 안의 혼란을 정리하고 싶다'는 명확한 목적이 있을 때, 글은 저절로 방향을 찾아갔다. 어떤 단어를 선택할지, 어떤 문장 구조를 쓸지, 어떤 톤으로 전개할지가 자연스럽게 결정되었다. 이유가 나침반이 되어 글의 여정을 이끌었던 것이다.

 

글쓰기는 결국 선택의 연속이다. 수많은 단어 중에서 하나를 고르고, 여러 문장 구조 중에서 하나를 결정하고, 다양한 전개 방식 중에서 하나를 택한다. 이 모든 선택의 기준이 되는 것이 바로 '왜 쓰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이유가 명확하면 선택도 명확해진다. 설득하려는 글이라면 논리적인 구조를 택할 것이고, 감동을 주려는 글이라면 서정적인 표현을 선택할 것이다.

 

그런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점점 더 이유 없이 글을 쓰도록 강요받는다. SNS에 무언가를 올려야 한다는 압박, 일기를 써야 한다는 강박, 생각을 정리해야 한다는 조급함. 이런 외부적 압력은 우리로 하여금 '왜'라는 질문을 건너뛰게 만든다. 그저 써야 하니까 쓰고, 올려야 하니까 올린다. 하지만 그렇게 생산된 글들은 진정성을 잃기 쉽다.

 

진정성 있는 글은 반드시 이유에서 출발한다. 그 이유가 거창할 필요는 없다. '오늘 본 노을이 너무 아름다워서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는 소박한 이유도 충분하다. '내 안의 분노를 토해내지 않으면 미칠 것 같다'는 절박한 이유도 좋다. '이 순간을 잊고 싶지 않다'는 단순한 이유도 훌륭하다. 중요한 것은 그 이유가 진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AI사용 사진

또한 이유를 안다는 것은 독자를 이해한다는 것과도 연결된다. 누구에게 쓰는지 모르면 어떻게 쓸지도 모른다. 전문가에게 설명하는 글과 초보자에게 설명하는 글은 다를 수밖에 없고, 친구에게 보내는 글과 대중에게 발표하는 글도 달라야 한다. 이유를 명확히 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독자를 상정하게 되고, 그에 맞는 글을 쓸 수 있게 된다.

 

글을 쓰는 이유를 찾는 것은 때로 어렵다. 막연하게 뭔가 쓰고 싶다는 충동만 있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일단 써보는 것도 방법이다. 쓰다 보면 이유가 드러나기도 한다. 하지만 끝까지 이유를 찾지 못한다면, 그 글은 아마도 완성되지 않을 것이다. 혹은 완성되더라도 생명력 없는 글로 남을 것이다.

 

결국 '내가 글을 쓰는 이유를 모르면 무엇을 쓰는지 모른다'는 말은, 글쓰기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의도와 목적을 가진 행위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우리는 무작위로 단어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의도적으로 단어를 선택하고 배열한다. 그 '무언가'가 바로 이유이며, 그것을 명확히 할 때 비로소 우리는 무엇을 쓰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글을 쓰기 전에, 아니 글을 쓰는 중간중간에도,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왜 이 글을 쓰는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누구에게 전하고 싶은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이 명확할수록, 우리의 글은 더 힘을 얻는다. 반대로 이 질문들을 외면한 채 쓴 글은, 아무리 화려한 수사로 치장해도 공허할 수밖에 없다. 이유가 영혼이라면, 글은 그 영혼을 담는 그릇이다. 영혼 없는 그릇은 결국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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