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에서 완성으로: 글쓰기의 새로운 목표
완벽주의자에게 글쓰기는 끝없는 고문이다. 한 문장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고, 단어 하나를 두고 사전을 뒤적이며, 문단의 순서를 바꾸느라 밤을 새운다. 그렇게 며칠, 몇 주가 지나도 글은 완성되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완성할 수 없다. 완벽주의자의 눈에는 언제나 고쳐야 할 부분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이 글이 완벽해질 때까지는 세상에 내놓을 수 없어." 하지만 그 '완벽한 때'는 결코 오지 않는다.
문제는 완벽함이 실재하지 않는 개념이라는 데 있다. 완벽함은 플라톤의 이데아처럼 현실 너머 어딘가에 존재하는 이상향일 뿐,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서는 구현될 수 없다. 세상의 모든 명작들,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설들, 수백 년을 견뎌온 고전들조차 완벽하지 않다. 그 작품들에는 어색한 문장도 있고, 논리적 비약도 있으며, 더 나은 표현으로 바꿀 수 있는 부분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그 작품들은 '완성'되었고, 세상에 나왔으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완벽하지 않아도 완성될 수 있고, 완성되면 가치를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여기에 있는 교훈이다.

완성을 목표로 한다는 것은 결국 '충분함'의 기준을 스스로 정하는 일이다. 이 글이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는 무엇인가? 그 메시지가 독자에게 전달될 수 있는가? 이 두 질문에 답이 '예'라면, 그 글은 이미 충분하다. 물론 더 나은 비유를 찾을 수도 있고, 더 우아한 문장으로 다듬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다. 완벽주의자들이 놓치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그들은 '더 나은 것'과 '필요한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 모든 개선의 여지를 필수 과제로 여기기에, 글쓰기는 끝나지 않는 의무가 되어버린다.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첫걸음은 초고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다. 초고는 완벽할 필요가 없다. 아니, 완벽해서는 안 된다. 초고의 목적은 생각을 종이 위에 옮기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헤밍웨이는 "모든 초고는 쓰레기다"라고 말했다. 이는 초고를 폄하하는 말이 아니라, 초고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이다. 초고는 원석이다. 다듬어지기를 기다리는 재료이지, 완성품이 아니다. 완벽주의자들은 초고를 쓰는 단계에서 이미 완성품을 만들려 하기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생각나는 대로 써내려가는 것, 어색하고 투박해도 일단 문장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초고의 임무다.
두 번째 단계는 수정의 범위를 제한하는 것이다. 완벽주의자들의 수정은 끝이 없다. 한 번 수정하고 나면 또 다른 문제가 보이고, 그것을 고치면 또 다른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이는 무한 루프다. 이 루프를 끊으려면 수정 횟수를 미리 정해두어야 한다. "이 글은 세 번만 수정하겠다"고 결심하는 것이다. 첫 번째 수정에서는 논리와 구조를 점검한다. 글의 흐름이 자연스러운가, 주장이 명확한가를 본다. 두 번째 수정에서는 문장을 다듬는다. 불필요한 말을 지우고, 애매한 표현을 명확하게 만든다. 세 번째 수정에서는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확인한다. 그리고 끝이다. 네 번째 수정의 유혹이 찾아오더라도 거기서 멈춰야 한다. 이것이 자기 통제이며, 완성으로 가는 훈련이다.
마감을 설정하는 것도 중요한 전략이다. 완벽주의자들에게 시간은 적이 아니라 오히려 공범이다. 시간이 많을수록 고칠 부분이 더 많이 보이고, 완성은 더욱 멀어진다. 역설적이게도 시간 제약은 완성을 돕는다. "이 글은 이번 주 금요일까지 끝내야 한다"는 명확한 데드라인이 있으면, 우리는 완벽함 대신 완성을 선택하게 된다. 실제로 많은 전문 작가들이 마감의 압박 속에서 가장 생산적으로 글을 쓴다. 마감은 완벽주의라는 늪에서 우리를 건져내는 구명줄이다.
또한 피드백을 활용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 완벽주의자들은 글을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으려 한다. 완벽하지 않은 것을 남에게 보이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두려움이다. 글은 독자와의 소통을 위해 존재한다. 독자 없는 글은 의미가 없다. 따라서 완성되지 않은 초고라도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 보여주고 의견을 구해야 한다. 그들의 피드백은 당신이 놓친 부분을 알려주고, 어떤 부분이 이미 충분히 좋은지도 알려준다. 때로는 당신이 문제라고 생각한 부분을 독자는 전혀 문제 삼지 않기도 한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 우리는 점차 '충분함'의 감각을 기르게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의 전환이다. 완벽주의는 사실 글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완벽하지 않으면 비난받을 것이라는, 가치 없는 사람으로 여겨질 것이라는 두려움. 하지만 글쓰기는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시험이 아니다. 글쓰기는 생각을 나누고, 감정을 전달하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행위다. 불완전한 글도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고, 영감이 되며,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다. 반면 완벽을 추구하다 세상에 나오지 못한 글은 아무에게도 아무것도 줄 수 없다.
글을 완성한다는 것은 글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글을 세상에 내보내는 용기를 갖는 것이다. "이 글은 완벽하지 않지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며, 누군가에게 의미 있을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이것이 진정한 작가의 태도다. 완벽주의는 글을 인질로 잡지만, 완성주의는 글을 자유롭게 한다.
결국 완성을 목표로 한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것이다. 충분히 좋은 것도 좋다고 인정하는 것, 더 나아질 수 있지만 지금도 가치 있다고 믿는 것, 그리고 마침표를 찍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것. 한 편의 완벽한 글을 쓰려다 평생을 보내는 것보다, 여러 편의 완성된 글을 통해 성장하는 편이 낫다. 글쓰기는 완벽함의 추구가 아니라 완성의 축적이다. 한 편 한 편 완성할 때마다 우리는 더 나은 작가가 되고, 더 자유로운 표현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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